가이낙스가 2007년 신극장판 [서]를 내놓았을 때 만 해도 '이놈의 사골게리온 변태집단' 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었지만, 2009년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신극장판 '파'를 내어놓으며 그 비난들을 말끔히 잠재웠다. 그저 어서 다음 편을 내어놓아 주시기만을 바랄 뿐이다.





ozzyz님의 리뷰에 적혀있는 대로, 벌써 2010년을 전후하는 이 시점에서 찾을 수 있는 에반게리온의 미덕은 거의 유일무이한 거대로봇액션물의 명맥을 충실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도의 퀄리티라면 사실 똑같은 스토리로 작화만 새롭게 내어놓아도 굶주렸던 팬들은 열광할 수 밖에 없다. 초반부 바다 위를 걸어오는 사도와 싸우는 에바 2호기의 현란한 자유낙하 액션은 아직도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파]는 정말이지 파격적이었다. 10년간 우려먹던 사골을 드디어 내다 버리고 완전 신장개업을 했다고나 할까. 신지의 폭주장면을 두고 '에반게리온 특유의 막장캐릭터를 잃었다.' 거나 '니가 열혈 그렌라간이냐' 등의 비난도 많았지만, 결국 수 만년간 삽질해온 신지도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신지와 함께 찌질이 루저 청소년기를 보냈던 (나를 비롯) 어른들에게 이 장면은 커다란 쾌감을 선사했다. 개인적으론 정말 10년 묵은 체증이 풀리더라.

대단한 매력을 지녔지만 언제나 시리즈의 엔딩에만 살짝 얼굴을 내밀던 카오루가 신극장판에선 초중반부터 맹활약한다는 점도 정말 파격적이었고, 이제 막 이야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서드임팩트에 세계멸망으로 치닫는 너무나 빠른 스토리 전개도 흥미진진했다. (엔딩크레딧 이후 일단 동결)

대부분 일본 애니메이션 대작(?)들은 의외로 심플한 주제를 고수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역시 '찌질했던 한 소년이 행복하게 성장하는 이야기'다. 나머지 요소들은 그저 신나게 즐기면 되는 것이다. 덕분에 온 인류의 미래가 왔다 갔다 하지만. 온 우주를 멸망시킬 번 했던 한 소녀의 1만년에 걸친 이야기 (건버스터) 보다는 양호하지 않은가.

아 정말 신나게 감상했고, 다음편이 기대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영화관에서 20~30번씩 감상하신 용자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그냥 영화관 2번, DVD로 5번 정도밖에 못 봤음.)



*

루프 설이니 어쩌니 하는 소문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예전 에반게리온 시리즈에서 연도가 표기되어 있었던 장면들이었다. 이카리 유이의 묘지나 엔트리플러그 상단에 찍힌 제작연도 등. 마침 [파] 초반부에 이카리 유이의 비석이 나오고 *102004 혹은 *402004 정도의 연도가 적혀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오리지널 버전에서 수 만년이 흐른 이야기라 생각하고 보는 게 자연스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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