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회가 생겨 하라 켄야의 세미나에 다녀왔다. 최근 전개하고 계신 Senseware 전시를 메인으로 소개하고, 강연시간이 조금 남은 김에 요즘 고민하고 계시다는 Simple vs. Emptiness 에 대한 주제로 잠깐 강연을 하셨는데, 이 Emptiness에 대한 이야기가 참 인상 깊었다. '디자인의 디자인'에서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사람과 역사와 디자인을 심도 있게 관통하는 진지한 통찰력을 가진 분이었다.




Senseware 전시 철학 
- 아직 발견되지 않은 디자인의 영역을 찾고자 함
- 전시 둘러보기 http://tokyofiber.com/en/

시간이 갈수록 우리 주위 환경은 점점 더 단순해져 간다. 무엇이든 숨기고 감추는 것이 트랜드가 되었다. 가구는 벽 속으로, 소파는 바닥 밑으로. 이러다 보면 결국 '면 / 표피'가 강조되는 시대가 오지 않겠는가. 생물의 표피를 보면 부드럽고 모습도 바꾸고 다양한데 왜 제품의 면은 그저 딱딱하기만 한가. 이 전시를 통해 "환경의 피막이 똑똑해지는 시대"를 그려보고자 했다.


Simple vs. Emptiness

요즘 대세인 Simple은 사실 최근에서야 생겨난 개념이다. 원래 세상은 복잡함 속에서 시작되었고, '힘'을 나타내기 위해 더욱 더 복잡함을 추구했다. (ex. 중국의 화려하고 복잡한 궁궐) 역사적으로 '장식'은 힘을 상징하는 문신이었다. (하라 켄야는 역사의 흐름을 '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디자인의 요소들을 그와 연결 지어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러한 '힘'을 모두가 나누어 가지는 시민사회, 근대사회가 도래하며 (Modern Design의 시작 - 인간과 소재와의 관계를 최단시간으로 그리는 것) 불과 150년 만에 복잡함이 사라지고 Simple함이 대세가 되었다. 이렇게 Simple 개념은 '합리성'을 그 기반으로 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Simple과는 다른 Emptiness 개념을 기반으로 한 문화가 발달해왔다. 과거 일본 역시 누구보다도 복잡한 문화를 추구하고 있었으나 16C 중반 국가적 큰 내란을 통해 모두 소실된 이후 그 실망감을 기반으로 '간결한', '아무것도 없는' Emptiness 개념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서양의 식칼은 손에 딱 맞는 형태의 Simple한 그립을 가졌지만, 일본의 칼에서는 아무데나 잡아 쓰면 되는 간소한 Emptiness 개념의 그립을 볼 수 있다.
 
Simple은 그 용도가 명확하지만 Emptiness는 사용자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이러한 디자인은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다. (Simple한 디자인의 고질적인 문제는 쉽게 질린다는 점임) MUJI의 모든 제품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Simple이 아닌 Emptiness를 기본 컨셉으로 한다. 우리는 일반적인 것, 보통의 것을 만들기 위해 많은 애를 쓴다. 어떠한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비워내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 MUJI는 사람들 각자에게 서로 다른 브랜드 이미지로 해석되게 되었다.

유행을 쫓지 않고 평행을 유지하는 디자인. 단지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현명해지는 소비를 유도하는 - 소비자로 하여금 "나는 충분한 돈이 있지만, 이 디자인을 찬찬히 보고 있으니 꼭 비싼 제품이 아니라도 이정도 제품이면 되겠어."라는 판단을 유도하는 - 디자인. 디자인의 결과물이 땅에 떨어져 욕망의 토양, 세상을 이루는 토양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을 미리 고려하는 디자인. 디자인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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