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엔 오전 중에 공항으로 가야했기 때문에 이 날이 어느새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타지에 나오면 그래도 편안한 집이 조금이라도 그리울 법 한데, 아 정말 이보다 더 돌아가기 싫을 수 가 없었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지만 정말 상상도 못했던 사건이 마지막날을 익스트림하게 장식해주었다. 결국 제발 집에만 돌아갈 수 있게 되길 빌고 또 빌었다.)



01. 퐁피두센터
빈둥빈둥 동네관광 컨셉에 맞게 마지막 코스는 시테섬을 중심으로 슬슬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는 지역들로 정했다.
(대략 퐁피두센터 - 마레지구 - 노트르담 - 아랍문화원)
주요 명소들이 도보 5~10분거리로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걷다보면 '서울에 비해 도시가 작고, 명소는 넘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02. 마레지구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마레지구. (여기서 리모델링 사업하면 평생 일거리가 넘칠 듯)
파리에서 돌아다니기 가장 좋은 지역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든 어디서든 작은 클래식카만 보면 꼭 한번씩 가까이 가서 둘러보게 된다.




03. 퐁네프 연인
퐁네프가 아니라 실제로는 퐁마리였지만, 어쨌든 분위기를 내며 다리 옆에 앉아 쉬었다. (물론 책 읽는 사진은 연출)
왠지 저기 앉아 있으려면 무슨 시를 쓰거나 연인과 키스를 하거나 해야 할 것 만 같은 압박이 든다.
영화, 드라마 같은 데서 자주 봐서 그런건지.



04. 노트르담 성당
마침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들어서는 순간 장엄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는데, 찬찬히 둘러보니 미사를 진행하시는 신부님 뿐 아니라 성가대와 밴드, 스탭, 각종 조명과 음향시스템이 최적으로 짜여져 있는 것 같았다. 엄숙한 의식에 압도되고, 너무 아름다운 성가소리에 넋을 읽고... 성당에서 나와보니 예상했던 시간을 훨씬 넘겼더라.




05. 오일퐁듀
여행기간 중 먹었던 음식은 다들 만족스러웠지만, 그 중 특히 대만족했던 오일-비프 퐁듀.
스테이크를 조각조각 따듯하게 원하는 만큼 익혀 먹는 느낌이랄까. 허름한 가게였지만 꼭 들러볼만 한 듯.
그런데 가게 이름이 생각 안난다. 노트르담 근처 식당골목(?)에 있음.




06. 꽃가게 앞에 선 배배꽃양
지금 생각해보면 꽃가게가 잘 되는 곳일수록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고, 여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동네마다 성업중인 꽃집을 발견할 수 있었고 발코니마다 꽃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07. 아랍문화원
왠지 '아랍스러움'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화




08. 아랍문화원 옥상
높지 않은 곳이지만, 파리의 다른 건물들이 워낙 낮아서 사방 끝까지 전망이 확 트여있는 장소.
2006년 출장으로 왔을 때는 여기에 정통 아랍스타일 차와 디저트를 파는 까페가 있었는데 이 때는 공사중이었음-_-





09. 라뒤레 장미 아이스크림
하루 코스를 다 마치고 마지막 저녁을 근사하게 먹으려고 라뒤레를 찾아갔다. 유명한 장미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이 사진을 찍는 그 순간! 옆 테이블에 가족 손님인 척 앉아있었던 다연령혼합성별조직도둑들이 의자 밑에 있던 내 가방을 들고 나가버렸다. 뒤늦게 가방이 없어진 걸 알아차렸지만 우리도 웨이터도 매니저도 경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길거리도 아니고 레스토랑의 2층 방이었는데, 정말 감쪽같았다. (샹제리제 거리에선 목에 걸고 있는 주머니도 가져간다고 하니...)

귀중품은 전부 호텔 금고에 있었지만 가방엔 나와 이화의 여권이 들어있었다! 벌써 날은 저물었고 다음날 오전에 체크아웃하고 비행기타러 가야하는데 현지에서 여권을 다시 발급받으려면 3~5일은 족히 걸리는 상황이었다. 나는 가방을 잃어버린 장본인이었던 터라 대략 정신이 안드로메다를 헤매고 있었는데 이화가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봤는데, 서울에 2~3일 늦게 돌아가고 금전적으로 150만원 정도 손해보는거야. 내일 대사관이랑 항공사 찾아가서 해결해보자.' 이화는 평소 작은 일에도 울고 불고 난리인 소심 스타일인데, 이런 큰 일이 닥치니 갑자기 든든한 지휘관으로 변신했다.



* 여권분실신고서

가까운 경찰서에 찾아가 작성한 분실 신고서.
워낙 도난사고가 잦아서 그런지 척척 알아서 다 처리해줬다.


호텔로 돌아와 파리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연락해봤지만 늦은 시간이라 아무도 받질 않았다. 다행히 서울에 있는 한국 영사관 24시간 콜센터에 연락해 파리에 있는 당직자 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다. 당직자분께서는 당장 경찰서에 가서 분실신고를 하고, 지하철역에서 증명사진을 찍어 다음날 아침 일찍 대사관에 찾아와 여권 말고 '여행증명서'라는 걸 발급받으라고 했다. 여권발급은 일주일 걸리지만 여행증명서는 24시간쯤 걸린다고.
(도둑맞은 다음부터는 경황이 없어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다. 파리경찰서랑 한국대사관 좀 찍어둘 걸.)





10. 다음날 에어프랑스 사무실
밤잠을 설치고 부랴부랴 대사관에 가서 여행증명서 발급 신청을 하고 (든든한 한국 직원들을 보니 어쩜 그리 반가운지) 아무래도 비행기 출발 전에 발급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에어프랑스 사무실에 찾아갔다. 그런데 절대 시간을 변경해줄 수 없다는 거였다. (여행사에서 최저가 구입한 티켓이라 원칙적으로 일정 변경이 안됨) 우리가 놀다가 늦은 것도 아니고, 부득이한 사고때문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담당자는 눈 한 번 깜짝 안하더라. 나중에 알고보니 이런 경우 다른 항공사에서는 시간을 옮겨주기도 하지만 에어프랑스는 짤없다고.

어느새 비행기 출발이 3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다 포기하고 그냥 호텔 숙박 연장하고 대사관이 쉬는 주말내내 프랑스 여행이나 다닐까 생각도 했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일단 이화는 대사관으로 돌아가고 나는 호텔에 가서 체크아웃하고 짐을 가지고 오기로 했다. 마침 택시기사분이 영어까지 잘 못하셔서 고생고생 손짓발짓 설명으로 체크아웃하는 동안 택시를 잡아두고 (호텔 앞에서 짧은 시간 내에 택시 다시 잡기가 어려움) 짐을 싣고 부랴부랴 한국대사관으로 향했다. Korean Embassy를 절대 못알아듣는 기사분께 무려 R발음을 떨어가며 '꼬훼Corée 엠버시' 한 다음에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 정말 다급한 순간엔 뭐든 할 수 있겠더라. '제발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 라고 100번 되뇌었다.



* 여행증명서 (주요 일련번호나 직인은 모자이크)

대사관 직원분의 눈부신 일처리로 접수 4시간만에 발급받은 따끈따끈한 여행증명서!
살짝 겁에질린 표정의 지하철 스티커 사진이 포인트.




11. 꿈에 그리던 서울행 비행기
눈물없인 들을 수 없는 구구절절 중간과정은 생략하고 결과적으로 비행기 출발 15분을 남기고 출국수속을 마쳤다! 그토록 돌아가기 싫었던 서울은 어느새 가나안땅과 같이 느껴졌고, 타국에서 길잃은 국민을 24시간 여러모로 챙겨준 한국정부와 대사관, 영사관에 진심 감사드렸다. 그리고 힘든 상황에 대범하고 사려깊게 대처했을 뿐만 아니라 에어프랑스 직원과 유창한 영어로 싸워(?)준 이화에게 정말 감동했다. 사랑과 신뢰를 확인한 뜻깊은 신혼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거의 2년이 지난 지금도 이 때를 생각하면 참 재밌기도 하고 식은땀이 흐른다.)


*
1년 9개월만에 신혼여행 사진 정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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