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디자인 다큐멘터리 헬베티카를 제작한 게리 허스트윗 감독의 두번째 작품. 오브젝티파이드. 정말 현재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제품 디자이너들이 줄줄이 나와서 자신의 철학을 들려준다. 요즘 디자인계의 메인 화두인 덜어내는 (minimalism) 디자인, 지속가능한 (sustainable, eco, green, lohas) 디자인 이외에도 새로운 관점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결국 생각하고 고민할 거리들이 더 늘어난 셈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디자이너에게는 정말 주옥같은 영화이지 않을까. 메모지 들고 감상하길 추천.

기억에 남는 대목들을 좀 적어봤다.

매일 새로 쏟아지는 물건들은 이미 충분히 가진 10%를 위해서만 디자인되고, 나머지 90%의 사람들은 아직도 재화와 제품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올바른 디자인이 가져야 할 고민은 무엇인가.

좋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제품은 오히려 더 보편적이고 저렴해야 하는 것일 수 도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디자인을 부가가치를 더하는 요소로만 고려한다. 기업의 영리목적에 따라 제품의 가치가 진지하게 고민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제 곧 일반인들도 필요에따라 물건을 쉽게 만들어내는 시대가 올 것이다. 제품을 디자인 할 수 있는 툴이 모두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러한 시대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일까.

(우리 팀이 애써 만들었던 칫솔이 닳고 닳아 해변에 떠내려와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결국 쓰레기를 디자인하고 있다. 이제는 파는 것 뿐 아니라 사용 후의 일도 디자이너가 신경 써야한다.

Form follows function의 시대는 갔다. 아이폰 처럼 LCD display 안에서 모든 기능의 구현이 가능하다. 노트북을 처음 사용하는 것에 흥분했지만 어느새 그 안의 내용에 집중하게 되더라. 결국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인터랙션 디자인이 아닌가.
 

분명 얼마 전만 해도 미니멀리즘 디자인과 같은 조형적인 이슈나 친환경 디자인 같은 글로벌한 대세들에만 관심이 집중되었었는데, 요즘엔 빈곤층을 위한 디자인이나 모두를 위한 (Universal Design 개념과는 다름) 디자인에 더 관심이 간다. 서른 넘어가며 개인적인 관심사가 인민, 노동, 반자본(?)쪽으로 치우치는 것 같다. 이런 변화는 인류를 너무 사랑하는 아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최근의 일기들 (혼자가 아니야, 재능, 사춘기 등등)을 보면 평소 아내의 고민들이 어느새 녹아들어있음을 느낀다. 어쨌든 이 영화를 보고 나니 C급 좌파 디자이너의 삶도 참 폼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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