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다닐 때..
집에는 턴테이블이 딸린 오래된 전축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젊으셨을 때부터 소중히 여겨오신,
흰테두리 분홍색 배경 빨간 하트 마크가 찍힌
'the Carpenters'의 음반이 있었다.

아버지가 그 판(?)을 트실때는.. 조금이라도 그 판이 상할까봐 조심하셨고
덜그덕 소리와 함께 지지직거리며 흘러나오는 그 소리가 난 너무 좋았다.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그 여가수의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아버지께 물어봤었다.
'아빠 저 노래 부르는 사람은 몇살이예요? 아직 살아있어요?'
경상도 태생 장교 출신 아버지의 간결한 대답..
'그 여자.. 굶어죽었다.'(허억.. -_-;;)

그렇게 그 여가수가 거식증으로 죽었다는 걸 알게되었고
그때는 한창 조형기의 '탑 오브 더 월드'가 유행이었을 때였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나는 이 노래를 좋아할 수 가 없었다.
컨츄리틱한 구식노래.. 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서양노래(팝송-_-;;)란건 웬지 공일오비나
이승환의 노래같은 느낌을 나에게 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한동안 나는 그 노래를 들을 일이 없었다.


오늘 갑자기 국민학교때 듣던 그 노래가 그리워져서..
(사람이 나이가 드니깐 별게 다 그리워진다.. 쿨럭)
다운받아 듣게 되었다.
(아아 세상 참 좋아졌군.. 아부지한테 보내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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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on the top of the world
lookin' down on creation
And the only explanation I can find
Is the love that I've found
ever since you've been around
Your love's put me
at the top of the world.

난 아래의 피조물을 바라보며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요.
그걸 설명할 수 있는 단 한가지 이유는
내가 찾은 사랑 때문이란 거죠.
당신이 내 곁에 다가온 이후
당신은 날 세상의 꼭대기에
올려 준 거에요.
-------------------------------

노래를 들으며.. 정말.. 소름이 돋는듯한 감동이 있었다.
그리고 너무너무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Top of the World.. 이 노래는
한동안 불량가사의 곡들로 인해 피폐해져있던 마음에 엄청난 위안이 되었다.

다음곡으로 들었던
카펜터스의 The End of the World 라는 초특급 불량가사의 곡때문에..
다시 좀 암울해지긴 했지만..

서양사람도 이렇게나 애절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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