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김규항의 블로그
http://www.gyuhang.net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갖는 가장 큰 확신 가운데 하나는 아이는 배워야 한다는 것, 배움으로서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건 얼마간 맞다. 어른들이 가르치는 건 구구단만이 아니다. 교육은 제도 교육의 틀 안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좋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가르치며 아이들은 그걸 배움으로써 사람이 되어간다. 그러나 언제나 맞는 건 아니다. 아이들은 배우지 않았기에 훌륭하며, 배움으로써 망가트려지기도 한다.
지난 글에서 내 아들 김건이 “그런데 왜 어른들은 땅이 자기 거라고 하는 거야?” 라고 해서 가슴이 저렸다고 했었다. 김건은 말하자면 땅을 사유화하는 건 잘못이라는, 지구의 주인은 지구가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어른으로 치면 매우 특별한 사람에게서나 발견할 수 있다. 주류 사회에서 벗어나 생태주의적 실천을 하며 사는 사람 가운데서도 근본주의적인 경향의 사람에게서나.
그런데 아홉 살짜리가 그런 말을 하다니. 나는 내 아들의 특별함을 방방곡곡에 알려야할까? 그러나 실은 전혀 놀라운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니다. 아이들, 땅과 부동산 문제에 대해 아직 ‘배우지 않은’ 모든 아이들은 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은 땅과 집은 필요에 의해 분배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땅과 집에 관한 그들의 첫 생각이다. 그래서 그들은 큰 개를 키우고 싶을 때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
우리는 그 말을 ‘철없는 소리’라 여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땅과 부동산 문제에 대해, 그 더러운 현실에 대해 조금씩 가르친다. 아이들은 땅과 부동산에 대해 배움으로써 땅과 부동산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잃어간다. 그들은 배움으로써 그들의 훌륭함과 품위를 잃어간다. 아이가 배움으로서 사람이 되어간다는 우리의 확신은 종종 가소롭다. 그 즈음 김건과 나눈 집에 관한 대화.


“아빠 왜 우린 집이 없어?”
“우리만 없는 게 아니라 집 없는 사람 많아.”
“선태 삼촌 집도 다른 사람 거야?”
“아니.”
“영식이 삼촌 집은?”
“영식이 삼촌 거지.”
“규일이 삼촌네 집은?”
“그건 다른 사람 거야.”
“범수 삼촌도?”
“범수 삼촌 거고.”
“그런데 뭐가 많아?”
“그 삼촌들은 그런데 알고 보면 아빠 주변에도 집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아.”
“우리 나라에 집이 모자라?”
“아니. 집이 많이 모자라면 다 길에서 자게?”
“그런데 왜 집 없는 사람들이 많아?”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 때문이야.”
“여러 채를 가져? 자기가 다 살려고?”
“아니.”
“그런데 왜 집을 여러 채 가지는데?”
“돈을 벌려고 하는 거야.”
“어떻게?”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이 집값을 막 올려. 그래서 돈을 벌어.”
“많이?”
“그럼. 열심히 일해서 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벌지.”
“어휴.”
“집이 없어서 창피해?”
“아니. 하나도 안 창피해.”
“그래. 창피한 건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이야.”


Posted by gyuhang at 2006.04.07 02:54AM
TrackBack URL: http://gyuhang.net/mt/mt-tb.cgi/82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