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한여름 제주도 자전거 일주.
대학 1학년. 67kg. (거의) 거지여행. 용납하기 어려운 샌들+양말 조합은 햇볕에 발이 타서 그런 거...


어렸을 적 부터 자전거는 나에게 아주 친숙한 이동수단이었다. 초중고 내내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다들 그랬겠지만 도둑맞고, 고장 나고.. 내 손을 거쳐간 자전거가 한 5~6대 정도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도 기회가 되면 익숙하게 자전거를 타곤 했었다.




작년 4월, 따듯한 봄을 맞아 미니벨로 두 대를 구입하여 아내와 신나게 잘 타고 다녔다. 내 몸집에 맞으면서도 20~30만원 대 예산에 맞춰 살 수 있는 유일한 미니벨로가 yellowcorn의 mini20 모델이었다. (사진 뒤쪽) 요즘 자전거가 많이 좋아졌는지 저가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십 수년 전 타고 다녔던 삼천리 자전거 대비 너무 가볍고 구동계도 좋아 정말 부드럽게 쑥쑥 잘 나가더라.

그러다 10월 들어 자전거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mini20은 장거리용 자전거가 아니다 보니 한계가 느껴져 본격 자출용 자전거를 찾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자전거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3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1. 신체 사이즈가 평균을 넘어가면 몸에 맞는 자전거 선택폭이 매우 좁아지며 가격 역시 껑충 뛴다는 것.
2. 185cm짜리 아저씨가 타려면 프레임이 최소 17.5인치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
3. 로드바이크와 MTB의 장점을 합친 하이브리드 타입의 자전거가 출퇴근용으로 적합하다는 것.

가격은 수백만원 쉽게 넘어가는 모델들이 줄줄이 있었지만 내 처지에 그런 자전거를 타는 건 너무 오바고, (그저 10만원대 큼직한 MTB만 있어도 미니벨로보다 출퇴근이 편할 것 같았음.) 최소의 투자로 내 덩치에 잘 맞는 하이브리드 자전거로 아름다운 자출을 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세웠다.

며칠간 수천 번의 클릭 끝에 가장 보급형 하이브리드 모델인 '인피자 zh-500 (국산 40만원 대)'와 '스캇 서브 40 (외산 50만원 대)' 둘 중 하나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또 무슨 11년 형이 출시 될 테니 기다려야 한다느니, 그 가격에 중고로 상위 모델을 사라느니 하는 지식인 답변에 또 수백 번 고민하던 차에, 중고시장에 상태 좋은 zh-500이 20만원 대에 나왔길래 당장 연락하여 업어왔다. (판매자는 막 제대한 학생이었는데, 2009년에 휴가 나왔다 친구들이랑 자전거 여행을 하게 되어 구입한 뒤, 집에 죽 모셔놨다가 막상 작년 말에 제대하고 보니 다른 자전거를 사고 싶어 팔게 되었단다.)


반값에 업어온 인피자(코렉스) ZH-500


인심, 유효탑튜브, 싯포스트... 아 정말 공부 많이 했음.


http://runkeeper.com/user/hanos/activity/25405138


신나게 피팅하고 첫 자출을 했는데 (정말 여러 방면으로 신세계를 체험하긴 했으나) 정작 바람처럼 날아 회사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속도는 미니벨로 대비 전혀 빨라지지 않았고 엉덩이가 너무 아파 앉지도 서지도 못한 자세로 울면서 달려야 했다. 당장 안장부터 교체하여 통증은 해결했지만, 속도 문제는 결국 다리 힘의 문제라 생각된다. (지금 내 힘으로 낼 수 있는 최대 속력이 30km/h 라면, 지난 미니벨로의 한계가 마침 대략 30km/h 정도 되었고, 이번 자전거는 40km/h 까지도 넉넉히 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리가 그런 기어 비를 굴러내질 못하더라.)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 해 만들었다는 Selle 안장 (그래도 보급형이 있더라)

이러다 결국 부품 가격이 차체보다 비싸질 듯. 슬슬 헬멧도 좀 도시남에 어울리는 스타일로 사고 싶지만 아내가 지켜보고 있는 한 힘들 것 같다. 여튼 '요즘 자전거 잘 사서 신나게 타고 다닌다. 겨우내 유용한 자전거 정보를 많이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간단히 적으려고 블로그에 들어왔다가 무슨 장황한 수기를 쓴 것 같다. 미처 몰랐는데 내가 자전거를 정말 좋아하나 부다. 새로 영입한 애마에게 이름이라도 하나 지어줘야겠다.

*
참 yellowcorn mini20 싸게 사실 분 연락주삼. 12만원에 배달 가능.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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