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os' Diary #903
20061209, 토요일, 이젠겨울



[이 로고.. 이제 우리 단체에서 공식적으로 쓸 건데
어디서 베껴만든거 아니죠? 혹시나 확인 해 두려구요.]

3년 전인가, 탈북자 학교를 돕기 위해
애써 로고와 사이트를 만들어 드린 다음 날 걸려온 전화 내용이다.
어이를 완전히 상실해버린 나는
그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그 단체와의 관계도 끊어버렸다.

몇 주간 무료로 그 단체를 도우면서 굉장히 마음고생을 했었다.
담당자 분은 자료와 기획서를 기한 내에 만들지 못했고
답답해 자료를 챙기러 학교에 찾아간 나를,
교장 선생님께서는 '그깟 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으로 대했던 아픈 기억이 남아있다.


최근,
바로 그 탈북자 학교에서 출판된 '꿈꾸는 땅끝'이란 책을 읽고 있다.
날 괴롭혔던 그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귀한 사역을 확인하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 분이 그 때 그 교장선생님

당장 동료들이 두만강과 베트남 국경에서 총알을 피해야 하고,
내일 중국대사관에 돌입하느니 마느니 하는 상황에
홈페이지 관련 자료와 기획서 제작이란 건 그들에겐 조금도 급한 일이 아니었을테고
brand identity와 web usability 개념이란 건 "한낱 그깟 그림"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속고, 속이며, 죽음의 위기를 넘어온 그들에게
"이거 무슨 문제 있는거 아니죠? 확인해 두려구요." 라는 질문은 당연한 건 지도 모르겠다.

3년이 지났지만,
혼자서 괜히 그들을 미워했던 오해를 풀게되어 다행이다.


'절실함, 위급함' 이라는 문제 앞에서,
디자인이란 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일까.
그러나 그들도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게 아닐까.
지금 나는 연결할 수 없는 수위의 두 영역을 연결해 보느라 괜히 고민하고 있는 걸까.

땅끝이 아름다워지는 일에 디자인이 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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