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os' Diary #1047
20090822, 토요일, 덥다



경상도 토박이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 본인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빨갱이 사탄의 우두머리 정도 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다행히 나이가 들고 머리가 굵어지며 그 분의 능력과 업적을 다시보게 되었지만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건 사실이었다. 돌아가신 뒤 공개된 짧은 일기들을 읽으며 내가 정말 그 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음을 알았다. 참 심플한 어투로 짧게 적은 일기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말이지 존경스럽고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희호 여사님의 마지막 인사말처럼 천국에서 잘했다 칭찬받으며 평안을 누리시길 빈다.



▼ 김대중 대통령의 일기 중 일부

2009년 1월 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4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2009년 1월 15일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


2009년 1월 26일
오늘은 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2009년 2월 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009년 2월 20일
방한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출국 중 전용기 안에서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로 1. 클린턴 대통령의 안부 2. 과거 자기 내외와 같이 있을 때의 좋았던 기억 3. 나의 재임시의 외환위기 수습과 북한 방문시 보여준 리더십 4. 다음 왔을 때는 꼭 직접 만나고 싶다 5. 남편 클린턴 대통령도나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힐러리 여사가 뜻밖에 전화한 것은 나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에 대한 메시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무튼 클린턴 내외분의 배려와 우정에는 감사할 뿐이다. 


2009년 5월 18일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내한한 길에 나를 초청하여 만찬을 같이 했다.
언제나 다정한 친구다.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 논의하고 나의 메모를 주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에 보낼 문서도 포함했다.
우리의 대화는 진지하고 유쾌했다. 


2009년 5월 29일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2009년 5월 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2009년 6월 2일 
71년 국회의원 선거시 박 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 이희호 여사의 마지막 편지

사랑하는 당신에게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너그럽게 모든 것을 용서하며 아껴준 것 참 고맙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기를 빕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 어려움을 잘 감내하신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줄 믿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로호 단상 2  (0) 2009.08.31
나로호 단상  (4) 2009.08.23
차별화  (0) 2009.08.08
재능  (4) 2009.07.2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