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관명 기자




앙드레 김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명성의 패션 디자이너이다. 그러나 그 특이한 억양 때문에 종종 성대모사라는 구실로 희화화된 적도 퍽이나 많았다. 올해 고희를 맞은 '어른'인데도 말이다.
고 이주일 선생님이 살아 생전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일월드컵 당시였으니 벌써 3년 여 전 일인데, 이주일 선생님과 앙드레 김은 무척 친분이 두터웠다. 분당 저택에서 기자에게 들려준 말을 옛 취재수첩을 꺼내 적어본다.

"내가 1980년 TV를 통해 유명해진 후 처음 의상협찬을 해준 사람이 바로 앙드레 김이다. 그 해 가을 그가 방송사로 찾아와서는 어깨 선이 풍부한 우주복을 네벌이나 선물했다. 치수를 잰 적도 없는데 귀신같이 옷이 맞았다."

"내가 아는 한 그는 대한민국의 숨은 외교관이다. 주한 외교사절의 이취임식 때면 그는 언제나 만찬을 열어 외교사절 부인들에게 멋진 드레스를 2벌씩 선물한다. 한때 연예인들이 외국비자를 받지 못하면 누구보다도 먼저 그에게 달려가곤 했었다. 내가 파리에 갔을 때 만난 외국 인사들도 그의 안부부터 물었다."

"그가 내게 자주 들려준 말이 하나 있다. '유명해진 스타에게 내 옷을 선물하는 것을 30년 넘게 해왔다. 그들이 내 옷을 입을 때 나는 가장 기쁘다. 그 이상의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주일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기자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던 것은 이 대목이다.

"(이런) 양반이 종종 코미디 소재로 이용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1999년 옷 로비 청문회 때 그의 본명 '김봉남'이 알려지자 일부 몰지각한 젊은 연예인은 그의 말투와 본명을 갖고 말장난을 많이 했다. 그의 인격이나 프로근성, 애국심의 100분의 1도 못 좇아가는 놈들이 그 양반을 놀릴 때면 정말 한 대 쥐어 박아주고 싶다."

그랬다. 제 앞가림과 인기유지에만 연연해하는 속좁고 역량 없는 일부 연예인들이 연배 많은 패션디자이너를 빗대 그 얼마나 알량한 재주를 선보였던가. 또한 일부 어린 시청자들은 그러한 모습을 보고 또 얼마나 박장대소를 했던가.

26일 밤 방송된 MBC '스타스페셜 생각난다'은 전주에 이어 2회 연속으로 앙드레 김 편을 내보냈다. 지난주가 앙드레 김의 자라온 옛 시절을 들췄던 것이라면, 이날 2회 방송분에서는 '판타지'와 '화이트'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통해 앙드레 김을 재조명하려 애썼다. 또한 왕년의 스타 엄앵란씨를 스튜디오에 초청, 둘의 만남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날 방송에서 앙드레 김이 보여준 모습은 한마디로 '영원히 소년 같고 영원히 뜨거운' 예술인의 한 단면이었다. "너무 과장된 발음이 많아요"라며 후배 연예인들의 성대모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어 직접 "엘레강~~쓰"라며 시연까지 하는 모습에선, 이 시대 어른으로서 어린 친구들의 치기어린 장난까지 포용하려는 넓은 가슴을 보았다.

또한 이런 말까지 했다. "어릴 때부터 흰 색을 좋아했다. 시골지붕에 겨울에 흰 눈이 쌓일 때면 더욱 좋았다. 눈이 쌓이면 누구보다 먼저 밟고 싶었다. 지금도 흰 눈이 오는 순간이 좋다. 하얀 강아지까지 좋아한다."

나이들수록 세상사 비열한 모습에 순응하고, 남 이용해먹기에 앞장서는 우리네 모습과는 전혀 다른, 나이 일흔의 패션디자이너는 이렇게 수줍은 표정으로 자신의 동심과 꿈을 이야기했다. 또한 1962년에 처음 만난 엄앵란에게 지난 11월14일 결혼 40주년 웨딩드레스까지 선물한,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훈훈한 모습까지 이날 공개됐다.

어린 스타들이 자신의 옷을 입는데 한없는 기쁨을 느끼고, TV 오락 프로그램에선 무안해할 MC와 패널을 위해 일부러 자신의 성대모사까지 하는 앙드레 김. 고희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소년같은 상기된 얼굴로 패션쇼 무대를 진두지휘하고, 어린 개그맨들의 자기 흉내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에서는 진정 아름다운 예술인과 기대고 싶은 어른의 향기가 폴폴 난다.


minji2002@mtstarnews.com
머니투데이가 만드는 리얼타임 연예뉴스
제보 및 보도자료 star@mtstarnews.com
<저작권자 ⓒ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