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os' Diary #868
20060514, 주일, 반팔
지난 10여년간 상상만 해 보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오늘 오전, 충무로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래 다 깔아(?)버려 이 ***자식 !#$%^6"
어쩌고 하는 소리가 레일에서 들려왔다
화들짝 달려가 보니 50대 후반의 아저씨가 지하철 선로에 내려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라 역에는 사람이 10명 남짓 있었고
문제의 아저씨는 일부러 사람들이 주위에 없는 부분을 골라 내려가서
당장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술에 취해 실족하였거나, 어린아이가 떨어진 상황이었다면 바로 뛰어내렸을 텐데
자살하겠다고 꼬장부리고 있는 아저씨 옆에 뛰어내렸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서 도저히 내려갈 수 가 없었다.
나는 얼른 읽던 책을 가방에 넣고 옷을 추스렸고 (언제든지 뛰어내려갈 수 있도록)
주위 역무원을 찾고, 열차를 멈출 수 있도록 관제실 전화번호를 찾았으나
역무원도, 번호도 아무것도 없었다.
제일 가까운 모니터 카메라를 향해 마구마구 손을 흔들고
역무실을 찾으러 2층에도 뛰어올라갔으나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에 다시 뛰어내려가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에 손을 흔들어
다행히도 아저씨로부터 1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차량을 멈출 수 있었다.
차량이 멈추자 문제의 아저씨는 맥이 풀린듯 선로에 쓰러졌고
뒤늦게 모여든 아주머니들이 나를 보고
'선로에 떨어져 다친 노인을 보고도 끌어올리지 않는다' 며 뭐라고 했다.
달려온 역무원과 함께 선로에 내려가 아저씨를 들어올리자
아주머니들은 아저씨가 갑자기 떨어졌다느니 술에 취했다느니
보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역무원에게 계속 하셨고
그러는 동안 나는 어떻게든 열차에서 먼 곳으로 아저씨를 옮기려 했다.
아니나 다를까 멈췄던 열차가 움직이자 아저씨는 벌떡 일어나 다시 뛰어들려 하셨고
나는 발버둥치는 아저씨를 질질끌어 역의자에 눌러앉혔다.
참고인삼아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어간 역무원이
아저씨를 경찰에 넘겼다고, 협조해줘서 고맙다고
별일 없었으니 참고삼아 진술할 건 없다고 -_-;; 한 시간 후 쯤 연락해줬다.
...
위의 두서없는 상황설명보다 실제로는 367배쯤 놀랬다.
(아직도 조금 놀라있다.)
역무원을 찾아 2층으로 달려올라가면서 "띠리리리리" 하는 열차 진입 알림 소리를 듣는 순간
좀 전에 내 앞에서 걸어내려간 아저씨가
다시 내 앞에서 열차에 '찍'하고 깔리는 상상이 계속 머리속에 리플레이 되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왜 그 순간 하나님께 이 사건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기도하지 못했을까,
왜 하나님보다 역무원, 공익요원을 더 먼저 찾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가만히 기도만 하고 앉아있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태수습을 위해 행동하면서도 계속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멋지게 홀로 뛰어내려 아저씨를 건져올렸으면
네이버 뉴스에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상황은 절대 뛰어들지 못할만큼 무시무시했다.
(10년동안 머리 속으로 지하철 구조상황을 시뮬레이션 했음에도 불구하고)
멈춰있는 지하철 앞에서, 역무원과 함께 내려가는 동안에도
두려움에 떨며 간신히 내려갔다 올라왔으니까 말이다.
동영상 속 용감한 시민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었다.
휴우..
(놀란가슴을 쓸어내리며 일기를 마침)
20060514, 주일, 반팔
지난 10여년간 상상만 해 보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오늘 오전, 충무로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래 다 깔아(?)버려 이 ***자식 !#$%^6"
어쩌고 하는 소리가 레일에서 들려왔다
화들짝 달려가 보니 50대 후반의 아저씨가 지하철 선로에 내려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라 역에는 사람이 10명 남짓 있었고
문제의 아저씨는 일부러 사람들이 주위에 없는 부분을 골라 내려가서
당장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술에 취해 실족하였거나, 어린아이가 떨어진 상황이었다면 바로 뛰어내렸을 텐데
자살하겠다고 꼬장부리고 있는 아저씨 옆에 뛰어내렸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서 도저히 내려갈 수 가 없었다.
나는 얼른 읽던 책을 가방에 넣고 옷을 추스렸고 (언제든지 뛰어내려갈 수 있도록)
주위 역무원을 찾고, 열차를 멈출 수 있도록 관제실 전화번호를 찾았으나
역무원도, 번호도 아무것도 없었다.
제일 가까운 모니터 카메라를 향해 마구마구 손을 흔들고
역무실을 찾으러 2층에도 뛰어올라갔으나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에 다시 뛰어내려가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에 손을 흔들어
다행히도 아저씨로부터 1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차량을 멈출 수 있었다.
차량이 멈추자 문제의 아저씨는 맥이 풀린듯 선로에 쓰러졌고
뒤늦게 모여든 아주머니들이 나를 보고
'선로에 떨어져 다친 노인을 보고도 끌어올리지 않는다' 며 뭐라고 했다.
달려온 역무원과 함께 선로에 내려가 아저씨를 들어올리자
아주머니들은 아저씨가 갑자기 떨어졌다느니 술에 취했다느니
보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역무원에게 계속 하셨고
그러는 동안 나는 어떻게든 열차에서 먼 곳으로 아저씨를 옮기려 했다.
아니나 다를까 멈췄던 열차가 움직이자 아저씨는 벌떡 일어나 다시 뛰어들려 하셨고
나는 발버둥치는 아저씨를 질질끌어 역의자에 눌러앉혔다.
참고인삼아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어간 역무원이
아저씨를 경찰에 넘겼다고, 협조해줘서 고맙다고
별일 없었으니 참고삼아 진술할 건 없다고 -_-;; 한 시간 후 쯤 연락해줬다.
...
위의 두서없는 상황설명보다 실제로는 367배쯤 놀랬다.
(아직도 조금 놀라있다.)
역무원을 찾아 2층으로 달려올라가면서 "띠리리리리" 하는 열차 진입 알림 소리를 듣는 순간
좀 전에 내 앞에서 걸어내려간 아저씨가
다시 내 앞에서 열차에 '찍'하고 깔리는 상상이 계속 머리속에 리플레이 되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왜 그 순간 하나님께 이 사건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기도하지 못했을까,
왜 하나님보다 역무원, 공익요원을 더 먼저 찾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가만히 기도만 하고 앉아있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태수습을 위해 행동하면서도 계속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멋지게 홀로 뛰어내려 아저씨를 건져올렸으면
네이버 뉴스에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상황은 절대 뛰어들지 못할만큼 무시무시했다.
(10년동안 머리 속으로 지하철 구조상황을 시뮬레이션 했음에도 불구하고)
멈춰있는 지하철 앞에서, 역무원과 함께 내려가는 동안에도
두려움에 떨며 간신히 내려갔다 올라왔으니까 말이다.
동영상 속 용감한 시민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었다.
휴우..
(놀란가슴을 쓸어내리며 일기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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