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랬지만, 요즘 들어 부쩍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기다리게 된다. 단순히 예배 시간에 어떤 만족감을 주는 차원이 아니라 한 주를 살아가며 항상 설교 말씀이 생각나고, 삶에 적용하고픈 힘이 생긴다. 지난 연말, 목사님은 중국의 명의 ‘편작’의 예화를 들어 설교하셨다.

그토록 유명했던 편작에게는 두 명의 형이 있었고, 사실 형들이 그 보다 훨씬 더 뛰어난 의술을 가졌었지만 유독 편작만 유명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편작에게 물었더니 “저의 형님들께선 아직 아프지 않은 사람의 얼굴만 봐도 언제 어떤 병이 날 지를 알아 미리 약을 쓰고 치료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뛰어남을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저는 환자가 발병하고 나서야 그 병을 알아보고 고치기 때문에 아팠던 사람들이 저를 칭송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죽을 지경에서 살아나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망할 지경에서 다시 일어나야 감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루하루를 무사하게 사는 것, 평범하게 사는 것, 또 하루를 살았다고 하는 것,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여러분 한 해 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 해 동안 아무런 특별한 일이 없으셨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더욱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올 한 해를 되돌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혜를 느끼실 수 있으십니까? 그리고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실 수 있으십니까? 감사는 절대로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지로 되는 부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은 하루하루 생활 중에 이어집니다. 그 손길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 까지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바로 그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 드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보통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을 생각할 때, 매일같이 세상에 없는 이적을 경험하며, 일상과 분리된 좀 더 홀리한 일들에 반응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영적인 사람’은 언제나처럼 아침이 밝는 것에, 가족의 얼굴을 보며, 반복되는 출근길과 일터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현실에 충실하지 않은 삶은, 또한 영적일 수 도 없다.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전거 이야기  (8) 2011.02.20
고민은 조금만  (8) 2011.02.17
2010년 12월 31일  (0) 2010.12.31
감기 후기  (0) 2010.12.30

+ Recent posts